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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의 속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조짐은 이미 보름 전부터 있었다. 그 당시 뉴스에서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으니 노약자와 어린아이는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에서 반드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의 뉴스를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매년 겨울마다 반복되는 뉴스에 사람들은 또 다시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강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는 평상시에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라서 독감주의보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비정규직이라서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 이 주 후에는 꼼짝없이 쫓겨나게 된 강준은 복잡한 심정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약속장소인 포장마차엔 수영과 철호가 먼저 나와 그를 기다리고 ..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조짐은 이미 보름 전부터 있었다. 그 당시 뉴스에서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으니 노약자와 어린아이는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에서 반드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의 뉴스를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매년 겨울마다 반복되는 뉴스에 사람들은 또 다시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강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는 평상시에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라서 독감주의보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비정규직이라서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 이 주 후에는 꼼짝없이 쫓겨나게 된 강준은 복잡한 심정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약속장소인 포장마차엔 수영과 철호가 먼저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명은 고등학교에서 만나 친해진 사이였다.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땐 장애물이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강준과 달리 수영과 철호는 고아원 출신이었다. 강준은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인간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리더십이 있는 수영을 도와주면서 철호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았다. 강준은 그때를 회상하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고 난 뒤에야 수영과 철호는 강준이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준과 티격태격 말싸움을 했던 철호가 그걸 핑계 삼아 갑자기 겨울바다를 보러가자고 제안했고, 수영은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자고 응답했다. 음주운전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준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자신도 뭔가 일탈을 하고 싶은 욕구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차에 올라탄 그들은 가까운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조수석에 탄 강준은 뉴스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선 독감과 관련해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이상한 내용의 뉴스 때문에 그들은 DMB방송을 켰다. 속보를 내보내고 있는 방송에서도 라디오와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전 세계에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각 나라는 출입국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운전 중에 내비게이션을 힐끗거리던 수영이 결국엔 사고를 냈다. 갑자기 도로로 뛰어나온 사람을 피하지 못한 채 차로 들이받은 것이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모두 불통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보니 도로에 쓰러져 있는 건 어린 여자아이였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녀를 강준과 함께 뒷좌석에 태운 뒤 수영은 병원을 찾아 차를 달렸다.
종합병원은 이미 포화상태라 어려울 것 같아 근처 개인병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은 구하지 못했다. 게다가 병원 안에서는 심상치 않은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와 그들을 두려움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빨리 차를 출발시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곳을 찾던 그들은 해수욕장으로 갈 수 있는 진입로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마을이 있을 거라는 예상에 맞게 민박으로 먹고 사는 주택가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바닷가로 나가 차에서 내리는데, 어딘가에서 날아온 화살이 철호의 허벅지에 박혀 바닥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멍한 눈빛에 느린 걸음걸이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그들을 피해 강준 일행은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횟집이었다. 국궁을 하는 횟집 사장이 철호를 이상한 사람들과 착각해서 활시위를 당긴 것이었다.
가까스로 그곳에 들어가 몸을 숨긴 강준 일행 앞에 횟집 사장 말고 다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횟집 사장의 아내와 딸, 그곳에서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는 무명작가, 그리고 앵두라는 상호명의 술집을 운영하는 황 마담이 그들이었다. 강준 일행은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금 전에 밖에서 만난 그 이상한 사람들은 독감에 걸려 죽었다가 되살아난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사실이었다.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그들 앞에 인근 부대에서 도망쳐온 군인들이 나타난 뒤, 상황은 또 다시 변화를 맞게 된다. 과연 그들은 보균자를 피해 무사히 마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예상치 못한 위협이 또 다른 곳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김형준
2013년 영남일보 문학상 소설부문으로 등단.
〈럭키 데이〉 〈10년 후〉 〈세 번째 옵션〉 등을 발표했으며 현재 '풀밭동인회', '200칸 이야기'에서 활동 중.
저서로는 장편소설 《인비보 프로젝트》, 소설집 《도둑고양이》가 있음.
이메일 : mc74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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