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씨의 『써브웨이』는 환상성이 가미된 작품이었는데, 판타지나 환상소설로 분류하기는 어려운 글이었다. 환상소설은 비현실적인 요소가 무작위로 등장하는 글이 아니라, 그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규칙을 통해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등장하는 비현실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널리 활용되는 원형을 고르는 것은, 해법이라기보다는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라고 밝혀두고 싶다. 순차적으로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그렇게 읽히지 않겠지만 글의 후반부에서 유도하듯, 환상 부분을 환각으로 처리하고 이야기를 사실적인 것으로 바꿔서 읽을 때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결말에서 제시된 사건은 왜 전날 밤 모텔에서 일어나지 않고 지하철 종점에서 일어나야 하는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p.588
김형준씨의 『써브웨이』는 근사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을 봉합하는 데 실패한 소설이 되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지하철에서 꿈을 꾸는 장면에서 이 소설의 매력이 발산되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장면을 쓰기에는 문장이 지나치게 거칠었다. - p.597
김형준씨의 『써브웨이』는 습작 경험이 비교적 많은 사람의 작품 같다. 시나리오작가인 일인칭 남성 서술자는 그의 성별, 직업, 세대, 정황에 들어맞는 말을 힘있게 구사하는 가운데 서스펜스 창출 효과가 있는 추리적이고 몽환적인 화술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자기도 모르게 휘말려 목격한, 약 이십 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한 여성의 복수(復讐)의 전말에 관한 그의 서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모티프들의 능청스러운 패러디를 포함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미스터리와 구경거리가 함께 갖추어진 한 편의 음모와 복수 드라마를 접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이 재미의 전부다. 이 소설에서 인간 행위나 세계 속의 사물이 다뤄진 방식을 보면 그것들을 단지 자극과 선정(煽情)을 위한 재료로 보는 경향, 진지한 분석이나 탐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술된 모든 사건들의 원점에는 서술자가 군 복무기에 만난 최상병이라는 인물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악한에 대한 서술자의 발언은 피상적인 논평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악이라는 철학적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그 재미는 오락물의 재미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을 누군가의 귀에는 꼰대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름에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 p.602
이상 2016년 문학동네 여름호, 제21회 문학동네작가상 발표 중에서 발췌
2013년 영남일보 문학상 소설부문으로 등단.
〈럭키 데이〉 〈10년 후〉 〈세 번째 옵션〉 등을 발표했으며 현재 '풀밭동인회', '200칸 이야기'에서 활동 중.
저서로는 장편소설 《인비보 프로젝트》, 소설집 《도둑고양이》가 있음.
이메일 : mc740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