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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한 성기

“유 기자님한텐 너무나 죄송하네요.”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사람한테는 동정심이라는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존심을 접어놓고 최선을 다해 살려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남자가 나를 붙잡고 있던 주먹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재갈을 풀어주었다.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뭔가 필사적으로 말씀하시던데, 무슨 얘기였나요?” 남자에게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 나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살려주세요. 살려만 준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완전히 달랐다. 칼로 몸을 찔러도 피 한 방..
“유 기자님한텐 너무나 죄송하네요.”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사람한테는 동정심이라는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존심을 접어놓고 최선을 다해 살려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남자가 나를 붙잡고 있던 주먹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재갈을 풀어주었다.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뭔가 필사적으로 말씀하시던데, 무슨 얘기였나요?”
남자에게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 나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살려주세요. 살려만 준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완전히 달랐다. 칼로 몸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경찰서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나에게 명함을 줬을 때하고 비슷한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김형준(金亨晙)
2013년 영남일보 문학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
〈럭키 데이〉〈10년 후〉〈세 번째 옵션〉등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인비보 프로젝트》와 소설집《도둑고양이》가 있음.
현재 유튜브에 비호책방을 개설하여 운영 중.
이메일 : mc74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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