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필작가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지금은 기획 출판사에서 대필작가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이쪽 일을 소개해준 건 대학교 선배인 박 실장이었다. 영화사가 망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졸업 후 처음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걸 계기로 박 실장과 나는 학교 선후배가 아닌 직장에서 갑을관계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모든 걸 처리해줘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자존심을 접어가며 그와의 관계를 유지해온 덕분에 올해도 나는 일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에 시작된 일은 자서전을 집필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땅 정가운데에 있다는 중앙빌딩의 운영자 미스터 센터가 자서전의 주인공인데, 이상하게도 그는 본명이 언급되는 것도 싫어했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었다. 하물며 자서전 대필을 맡긴 작가와의 만남도 거부했던 그가 오늘 중앙빌딩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물론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한 건 아니었다. 소식을 전해준 박 실장과 함께 나는 지금 중앙빌딩 지하주차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하며 약속장소에 가보니 주인공 대신 이 교수가 나와 있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학과장이었던 그는 교수직을 그만둔 뒤 지금은 기획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나를 이쪽 업계로 끌어들인 박 실장이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던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뿐, 우리가 들어와 있는 유흥주점 룸 안으로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인 엘르가 내 옆에 앉고 나서 나는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다.
밤이 지나고 또 다시 날이 밝은 다음, 나는 엘르의 도움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그녀는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오후 세 시까지인지 알아보니까 그 시간에 예식이 하나 잡혀 있었다. 중앙빌딩 팔 층은 예식장이었던 것이다. 재밌는 건 간밤에 약속장소였던 곳은 지하 일 층에 위치한 유흥주점이었다는 점이다. 예식장과 유흥주점이 같은 건물 안에 있다는 게 나로선 흥미롭게 여겨졌다.
사 층에 있는 여관에서 나온 뒤 우리는 일단 일 층에 있는 분식집으로 내려왔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허 씨 성을 가진 사장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주문전화가 걸려왔다. 허 씨는 주방으로 들어가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 음식을 시킨 사람이 일 층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아저씨라는 걸 알게 된 나는 허 씨를 대신해서 음식을 배달해주겠노라고 나섰다. 어차피 인터뷰 대상자에 속해 있던 사람이니까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 것인데, 김치찌개를 들고 경비실에 가보니 그곳에는 뜻밖에도 양 교수가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 그는 희곡을 가르치던 시간제 강사였다.
내가 졸업을 한 이후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양 교수는 경비원이 되어 있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던 중 그가 라 조교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라 조교가 이 층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모든 인연이 이 교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으며 나는 라 조교를 만나러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있는 노래방으로 모여든 허 씨, 양 교수, 라 조교 등은 지금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나 역시도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린 다음, 그걸 해결하기 위해선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미스터 센터를 직접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스터 센터, 그분을 만나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분은 중앙빌딩 구 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서 기거하고 있지만, 그런 그분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건물을 지어올린 지 십 년이 지나가는 시점인데도 상황이 이렇다면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공통된 목표는 이제 그분을 만나러 가는 것이 되었다.
2013년 영남일보 문학상 소설부문으로 등단.
〈럭키 데이〉 〈10년 후〉 〈세 번째 옵션〉 등을 발표했으며 현재 '풀밭동인회', '200칸 이야기'에서 활동 중.
저서로는 장편소설 《인비보 프로젝트》, 소설집 《도둑고양이》가 있음.
이메일 : mc7409@naver.com